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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자위해도 되는가?배움 2025. 6. 15. 19:21
글 들어가기전에 저는 초2쯤부터 자위를 시작해 4,5학년때도 조금 하고 작년 2024년에 들어서는 365일동안 자위안한적이 17일이 최고 였습니다.근데 이 글을 보고 단순히 종교적으로만이 것인게 아닌 성령적으로 인도하심과 말씀을 받은 것처럼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어 지금은 올해 금딸 41일로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앞으로도 100일 200일 1년은 필수, 가능한한 계속계속 안해보기로 노력하는 중입니다.글이 조금 많이 길지만 금딸 유지하고 싶은 기독교인들은 읽어보시길
(윗글은 다 직접 쓴 제 이야기고 아랫글은 다 펌입니다.)
기독교인이 자위해도 되는가?
자위 문제는 인터넷 상에서 활발히 토론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 입니다.어떤 목사님은 자위가 괜찮은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하십니다.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남자들은 보는 것에 민감하기에 노출이 많은 곳이면 순간 순간 음욕이 올라옵니다.
필자 역시 주어진 상황과 환경의 노출에 조심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위에 대한 문제 다루어 봅시다.
타인에게 "꺼져, 멍청한 놈아" 하지 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욕해도 되는 것일까요?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욕설은 더러운 말에 포함 됩니다.
"자위를 하지 말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정액을 배설하는 설정에 대해서 말합니다.
설정(히브리어:셰바카)에 대해 성경은 "정결과 부정"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것은 죄의 문제가 아닙니다.
레15:16 남자가 사정(설정)을 했다면 그는 온몸을 물로 씻어야 한다. 그는 그날 저녁까지 부정하게 된다.(우리말 성경)
레15:17 정액이 묻은 옷이나 침구는 모두 물에 빨아야 한다. 그러나 저녁까지는 이것도 여전히 부정할 것이다.(현대인의성경)
구약 율법의 정, 부정의 행위적인 규례는 신약에서 폐하여졌습니다.(히9:10-13)
히9:10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
레위기의 신학에서는 "정 = 거룩", "부정 = 죄"라고 무조건적으로 연결 시키지는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아닌 것 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 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이것 입니다.
"자위행위 그 자체"가 죄가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파생되는 많은 문제들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자위를 하는 이유가 비뇨기과 검사를 위한 자위는 아닐 것 입니다.
또한 6세 이하 유아기 때,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스로 성기를 만지는 자위도 아닐 것 입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자위는 "자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음란과 연결된 자위" 이지는 않습니까?
자위라고 명칭은 붙였지만, 결국 이것은 음란의 문제입니다.
음란은 따로 제가 언급하지 않아도, 성경의 아주 많은 부분에서 경고하는 것 입니다.
마5:28 -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주님은 음욕을 품는것만으로도 죄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위할 때, 머리 속을 텅텅 비우고 하진 않을 것 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위를 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위는 하되 야한 생각은 하지 말라. 신앙 안에서 건강한 자위를 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자위를 하라."
등등의 논리들을 펼치는데,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잘못하면 "밥은 먹되 똥은 싸지 말라." 같은 논리가 됩니다.
듣기에 논리 자체는 맞을 수 있지만,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냐하면, 실제 현실에서는 "음란과 연결된 자위"를 하고 있는 자기자신을 보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하면
"음란과 연결되지 않은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 자위 그 자체" 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범위 설정이 어렵습니다.
음란한 생각 안하고, 자위하면 성공!
음란한 상상이 1번이라도 스쳐가면 "자위 그 자체"에서 탈락일까요?
어제는 성공 했는데~~우씨! 오늘은 "자위 그 자체"에서 실패했어... 우연히 옆집 아가씨를 만났는데 생각나더라고;
이런식의 접근법으로 하면 우스꽝스러운 전개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으로 접근해봅시다.
사실 자위가 죄냐 아니냐를 이야기 하기 전에
내 마음에 음란한 것을 계속 갈망하고 허용 한다는것 자체도 큰 문제 입니다.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우리의 욕심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음란도 끝나지 않습니다.
점점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며, 자위를 한 두 번 즐기다 보면 횟수가 늘지는 않았습니까?
더 큰 쾌락을 찾는 자신을 보았지 않습니까? 쾌락의 노예가 되며, 무절제의 시작입니다.
이런 현상 자체가 자위가 죄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논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1)의사들이 그러는데 일주일에 한 두번 자위는 괜찮다고 하던데?
2)의사들이 그러는데 적당히 자위를 해야 건강에 오히려 더 좋다고 하던데?
3)의사들이 그러는데 정액은 쌓이는거라서 빼야된데 안 빼면 의학적으로 전립선에 안좋다는데?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이런 논문, 저런 논문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연구한 학자들의 지식은 소중합니다. 사람의 생활에도 유익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학자들의 연구, 인간의 몸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신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진리를 다루는 문제입니다.
온갖 음란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천재라 불리는 지식인들도 음란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듯한 말로 우리를 속이며 자신들도 멸망함에 이릅니다.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두고
또 어떤 분들은 "죄의 위험성"에 관하여 간과한 잘못된 성경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차피 인간은 죄 가운데 있지 않냐? 자위만 왜 그렇게 시비를 거냐? 라고 말하며 죄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이유가 뭐야? 어차피~~!! 인간은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짓거든? 의인은 원래 없어!
그래서 예수님이 있는거잖아? 라고 말하며
죄를 지어도 그것은 인간의 연약한 한계일 뿐이라는 식으로 죄를 은근히 변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한계는 있지만, 예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죄 가운데 거해서는 안되는 것 입니다.
죄에 대해 안일한 태도는 예수님의 용서하심에 침을 뱉는 일 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인에게서는 본성적으로 죄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결과적으로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어느 정도의 선까지, 절제와 통제가 가능한 정도의 수준이 되는 것 입니다.
어떤 거룩한 신자도 그 죄성이 제로가 될 수 없으며, 정욕 이라는 것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만만하게 보거나 방심해선 안됩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며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 입니다.(눅9 : 23)
위의 죄인됨을 이야기 한 이유는
죄는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 죄도 크기가 있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선이 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것이 살인과 같다고 하지만, 미워함이 살인까지 이르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음욕 품는것이 간음과 같다고 하지만, 음란함이 자위까지 이르는 것은 매우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음란한 생각이 스쳐 지나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을지 언정, 어떤 행위가 실현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며,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는 주님의 말씀과는 달리
어떤 사람에겐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것처럼
그 욕심에 끌리는 자는 시험을 받으며 시험은 힘들기만 할 것 입니다(약1:14-15)
칼이 나쁜가? 아닙니다.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과
칼로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욕을 주셨습니다. 성욕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욕을 자위를 통해 음란을 누리는 도구로 사용하라고 하지는 않으셨다는 것 입니다.
고전6:13 (하반절)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자는 자기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고전6:19 너희몸은 너희가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가운데계신 성령의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롬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말라
우리가 자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필자 역시 음란 중독 시절을 겪으며, 성적인 문제로 많이 넘어졌고 피 터지게 싸워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방심하지 않고 기도함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지냅니다.
특히 성적인 죄는 은밀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유혹의 상황에 쉽게 노출되기에 위험합니다.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은밀하기에 스스로가 고치지 아니하면, 옆에서 누군가 바로 잡아 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필자의 입장은
자위에 대하여 오해할 소지들이 많기에
인간 내면의 부패함을 보며 자위가 죄가 될 수 있다는 각도를 소개 했습니다.
혹여 제 글에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앞에 진실된 신앙을 위하여
하나님께 묻고 직접 성경을 읽으며 성령님이 조명하시도록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여러분께서 직접 찾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의 신에게 기도할 때
그 분은 인간이 알아듣던지 말던지, 대충 추상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 말씀 가운데 성령으로 조명하여 그 분의 음성을 듣게 해주시는 분임을 진짜 믿는 사람이 답을 얻습니다.
아무튼 이 정도 얘기하면 필자의 견해를 어느 정도는 설명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여러 사이트를 찾아보면서, '자위' 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위를 해도 괜찮은 것으로 변호하는 사이트가 생각 의외로 많고, 나름대로 논리가 어느 정도 탄탄합니다.
논리는 좋습니다. 무슨 말인지도 알겠습니다.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러한 이론으로는 끝도 나지 않고, 그리스도인끼리 물고 뜯는 일 밖에 안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죄다, 죄가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 중의 핵심은
"하나님께 영광" 이 되는 삶 입니다.(고전10:31)
그렇다면 자위는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영광 돌려졌는가? 라는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자위가 어떤 방식으로 '신앙 성장과 은혜'(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에 도움이 되었습니까?
정말 여러분은 자위를 통해 "신앙이 자라가고,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고 생각합니까?
저는 지금껏 자위에 대한 견해를 전했지만, 정말 여러분이 자위로 아름답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계신다면
저는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성경적인 영광스러운 것들을 은혜롭게 발견하고, 믿음을 따른다면 본인은 괜찮습니다.(롬14:22-23의 원리로)
그러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믿음의 방향이 어디 있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방향이 자위를 끊어내고 싶어서 오신건 아닌가요?
뿐만 아니라 성경의 빛은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깊숙한 마음 밑에 깔린, 자기 자신도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
<교묘하게 숨겨진 교만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비추고 드러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기 네이버 블로그에 까지 들어와서 자위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면 "자기 주장" 이 옳음을 더욱 확신하기 위해서 입니까?
역시.. 자위는 나쁜게 아니었어!! 아싸 호랑나비~!!
자위에 죄책감을 주는, 유교 전통과 한국 교회는 역시 구시대적 사고야.
이제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신~나~게~ 자위하자. 나는 죄책감을 세뇌 당한당한거야.
서구 문화와 우리 문화는 다르잖아? 서구 문화는 자유롭게 자위하던데 한국만 닫혀 있어. 쯧쯧...시대를 못 따라가.
위와 같은 생각 속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인 근거를 찾는 이유는
하나님 자체, 그 분을 자체를 알기 원하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목적과 선한 방향성이 잘못 되었다면, 죄냐 아니냐가 사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자위보다 더 큰 숨은 죄를 허용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과 신학을 알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에는 본질을 잃습니다.
여기서부턴 볼드체 안 돼어 그냥 가는 글씨로 씁니다.
부분적 이론과 논리에 치우쳐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신앙"과 "성경해석에 대한 적용" 에 대해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자위가 죄라는 말이 성경에 없으니
자위해도 마치 괜찮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긴다면,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잘못된 적용입니다.
이런 식의 논리는 유치원생 같은 1차원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물론 성경도 자위에 대한 엄격한 정죄를 가하고 있지 않기에
자위에 대해서 너무나 엄격한 정죄를 가하는 것 또한 성경을 벗어난 잘못된 적용이겠지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 영혼을 위해, 중독될 염려가 있고
음란의 길로 빠져들게 하는 유혹 거리인 자위에 대해
반대적 적용을 권유하는 것이 안전하고, 그것이 영적인 경건에 바람직한 방향 입니다.
성경에서 자위를 언급하고 있지 않더라도, 자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개혁주의 기독교 윤리학의 가르침입니다.
나는 음란과 연결된 자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말할 수 있으면 자위 하십시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하십시오. 진리 안에서 자유하십시오.
부부가 장기간 떨어져 있을 때, 누군가는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자위를 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다만 성경적 지혜의 적용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핵심 논지를 이야기 했으니 다른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들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좋은 태도지요.
그런데 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극적-외형적 모습 뿐 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죄를 안 짓고자 하는 것도, 자기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단지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서 죄를 멀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양심을 위해) 죄를 안 지으면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까?"
괄호 속에 있는 내용은 자기 자신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지요.
철저히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 내면이 저렇게까지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물리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끊어내는데에만 힘 씁니다. 죄를 끊어내려는 아주 소극적 시도 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죄를 끊어낸게 아니라 끊어낸 것처럼 보일 뿐 입니다. 죄를 미워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가 나중에 무엇을 칭찬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그저 드러나는 행동과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애를 쓰는데에 그치며
자기의로 물든 헛된 경건의 모습, 자기 만족적 신앙생활에 빠져 하나님 앞에서 체면 차리기에 바쁩니다.
또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르노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자위"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마6:33)를 구하기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기독교인으로서 담판짓고 피터지게 싸우고 논쟁하자는 주제가
"자위를 해도 되냐 마냐?" 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사실 참 마음 아픈 것 입니다.
사실상 이런데 신경 쓰고 있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죠.
자위가 괜찮냐 안괜찮냐를 토론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울에게는 어이가 없는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방구석에 틀어 박혀서 자위하는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시겠습니까?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지만, 자위 또한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위하면서 작은 행복감에 기뻐하며... 만족을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부러우시겠습니까?
음란과 연결되지 않은, "자위 그 자체"를 하면서
20년, 30년, 40년, 죽을 때까지 "자위 그 자체"를 하고 나면 그 뒤에 어떤 대단한 것이라도 남는 것일까요?
그럼 용암처럼 끓어 오르는 젊은이들의 성적인 욕구를 대체 어떻게 풀라는 말이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게 많은 사람들은 눈 앞의 성욕에 이미 눈이 멀어서 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보시고, 교리를 공부하며 지혜를 캐내십시오.
말씀 안에서 깊이 기도하며 깊은 우물에서 황금 같은 지혜들을 캐내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기독교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1. 자위가 여러분들에게 그렇게나 대단한 위로를 주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쪽으로 이끄는 경향이 큰가요?
2. 자위가 여러분을 중독과 음란으로 이끄는 경향이 큰가요? 우리가 자위라는 틈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요?
마귀에게 틈을 주지말라(엡4:27),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
하지만 성경은 연약한 부분이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동정합니다.
그렇기에 이런 말씀도 덧붙여 드립니다.
한 편으로는 인간으로서 완전하지 않기에, 때론 자위를 하며 살아갈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자위를 안하고 산다고, 그것을 대단한 자랑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금욕주의적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인간으로서 연약한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평생 자위에 머무를 순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자위에 계속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외에도, 다른 부분에 대해 말하자면 더 얘기할 수 있지만,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도우시기를 바라며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적인 죄와 싸우려고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필자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성적인 죄, 그래도 나는 안되는 것 같다. 아무리 해도 나는 못 끊겠다." 라고 하소연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성적인 죄를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왕, 다윗도 성적인 죄에 넘어졌습니다.(사무엘하11장)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출처:네이버 블로그 G각생
이게 어떤 신학교의 신학생이 적은 기독교인 자위글인데 논리 갑이긴 한데 글이 거의 설교 급으로 무지막지하게 길어 읽으면 읽긴 한데 복붙하는데만 1시간반~2시간이나 걸렸습니다.텍스트도 다듬고 내용도 깔끔하고 읽기 편하게 정리했습니다.뭐 내 금딸 40일을 돌파하게한 고마운 글이니까 이정도는 뭐..^^ㅎㅎ정말..힘들었으니까 댓글💬 공감♥︎ 많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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